오늘은 전도서를 읽기 시작하는 날이다. 서론을 읽었는데, 전도서의 저자인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이야기를 만났다.
이스라엘 왕 솔로몬, 그 이름의 뜻은 '평화'이지만 그는 고령이 되기까지 생애에 평화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솔로몬은 히브리 왕들 가운데서 지혜와 세상의 재산이 월등하게 많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영구적이고 진정한 행복을 얻는데 얼마나 쓸모없는 것이냐고 말한다.
그럼 사람이 어떻게 행복을 얻을 수 있었는가?
창조주 하나님과 연합함으로,
또한 자기를 존재하게 하신 거룩한 목적을 깨달음으로이다.
여기서 행복과 관련하여 복지국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우리들은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과 애정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분께 복종함으로 마지막 심판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전도서 (Ecclesiastes) 3장
전도서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은 전도자의 지도 아래 함께 모인 개인들의 회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치 우리가 새로남 쉼터에서 만난..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 '하부사' 그룹의 멤버들 처럼 느껴진다. 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각인이 하나님께 갖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심사에 무게를 두고 있다. 따라서 전도서는 혈통적인 이스라엘로부터 영적인 이스라엘로 옮겨가는 적절한 전기를 마련한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에게 주어진 지혜와 영광과 능력의 근원을 잃어버렸을 때 본래의 성향이 이성을 지배하게 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확신과 거룩한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는 저절로 무너지고 자기 신뢰와 자기가 하고자 하는 대로 선택하는 경향이 커졌다. 이성이 점점 더 기분에 지배됨으로, 솔로몬의 도덕적 감수성은 둔해지고, 그의 양심은 마비되고, 그의 판단은 왜곡되었다. 무신론적 회의와 불신이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도덕적인 원칙을 약화시키고 그의 생애를 타락시켜서 결과적으로 완전한 배교에 이르게 되었다. 수년 동안 그는 파멸로 이끌어갈 어리석을 행위로부터 돌이키려는 노력이 헛되므로 괴로워했다. (선지자와 왕, 51~77)
솔로몬의 중요한 핵심,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그의 생애가 끝나려고 할 때 드디어 양심은 소생되어 솔로몬은 참된 빛으로 어리석은 행위를 보기 시작하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시는 것처럼 자기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가 죽을 시간이 가까이 다가올 때, 자기가 낭비한 생애를 반성하면서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방종의 결과로 그의 마음과 몸은 이미 쇠약해졌다. 그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제멋대로 행한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보려고 애썼다. 영혼을 순화시키기 위하여, 지치고 목이 갈한 그는 세상의 깨진 물통에서 돌이켜 다시 한번 생명의 샘에서 물을 마시고자 했다.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하려고 했으나 오랫동안 낭비한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기적적으로 되찾지는 못했다. (치료봉사 169)
점차적으로 그는 자기 생애의 악함을 깨닫고, 자기가 거쳐 온 쓰라린 경험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경고의 음성을 높이 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따라서 솔로몬은 성령의 영감으로 자기가 낭비한 수년 동안의 역사를 후세대에게 경고의 교훈으로 기록했다. 전도서는 "그의 어리석음과 회개에 대한 기록"이며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선물들을 무가치한 것을 위해 낭비하도록 만든 잘못"에 관한 묘사이다.
솔로몬은 "지혜"라는 단어를 세상적인 지혜 와 참된 지혜 양쪽에 모두 사용했음을 주목해야한다. 어리석게도, 솔로몬은 자기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했으나(전2:9) 여러 해가 지나갈 때까지 이 치명적인 자기기만을 깨닫지 못했으며, 탕자처럼 그는 산전수전 다 겪고 더욱 현명한자가 되었다.(전7:23). 마치 하와가 자기의 원통함과 비통한 실망을 깨달은 것 처럼 죄의 기만성은 이와 같은 것이다.(창3:5-7)